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서양 전투 (문단 편집) == 뒷이야기 == 2차대전 기간 보이지 않는 주역인 수송작전에 대한 무용담(?)은 수없이 많다. [[레닌그라드 공방전]] 승리의 원동력이 된 라도가 호수의 얼음길,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의 레드볼 익스프레스, 악명높은 [[남방작전|버마]] 통로 등... 그러나 전투 규모나 치열함, 그리고 전세에 끼친 영향력 면에서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서양 전투가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독소전쟁]]이나 [[태평양 전쟁]]에 비하자면 화려함은 덜하나 잔혹함만큼은 그에 못지않았다. 상선이 일단 격침당하면 탈출이고 뭐고 없이 승무원 모두가 배와 함께 운명을... 아니 끔살을 같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며[* 이에 관해, 화물이 곡물(또는 광석)인 배의 선원은 밤에 구명조끼를 입고 자고, 화물이 잡화인 배의 선원은 밤에 구명조끼를 꺼내놓고 자지만, 화물이 탄약이나 연료유인 배의 선원은 밤에 마음 놓고 푹 자도 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유명하다. 다른 배들은 피격당하면 몇 초에서 몇 분 동안 허겁지겁 탈출해야 살 수 있는데 탄약이나 연료유 운반선은 어뢰에 맞는 그 순간 그대로 대폭발로 끝장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는 '''1,450만톤에 이르는 화물, 3,500여척의 상선, 32,000여명의 선원들을 잃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대전 동안 '''(군인도 아니면서) 그 어떤 군종보다도 가장 사상자 비율이 높았던 것이 바로 상선 선원이었다'''. 미국의 경우 약 4.5%, 영국의 경우 약 25%(!)이다.] 설령 구명보트로 탈출한다고 해도 혼자 다니는 배에서 나온 선원들이라면 구조신호를 보낼 방법이 없었다. 이론상으로는 침몰 좌표를 무선 연락한 뒤 탈출하도록 되어 있었다만 배 가라앉는 와중에 그럴 겨를이... 지금처럼 라디오 비콘이나 [[GPS]]가 도입된 시절도 아니었다. 그래서 거친 파도에 보트와 함께 삼켜지거나 바다를 떠돌다 고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록에 따르면 17일 동안 바다에서 표류하다 겨우 구조된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북극]] 항로 같은 해역은 바닷물의 온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일단 배가 침몰했다 하면 물에 빠지면 여름에도 30분 내, 겨울에는 즉시(!) 동태가 되고[* [[RMS 타이타닉|이 전쟁으로부터 30여 년 전 겨우 북위 42도 정도의 중위도에서 항해하다 침몰한 배]]의 경우, 수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4월 중순인데도 영하 2도까지 내려갔었고, 탈출한 승객들의 대부분은 10분 이내에 동사했다.], 구명보트를 탔다고 해도 추운 날씨로 인해 3일 뒤면 얼음덩이로 변하므로 침몰은 곧 죽음이라는 말이 통용될 지경이었다. 지금도 [[아일랜드]]와 영국 서해안에는 해안에 떠내려온 수많은 상선 선원들의 시신을 묻은 묘지나 위령비가 곳곳에 서 있다. 그렇다고 선단이라고 나은 것도 아니었다. U-보트 울프팩에게 습격받은 상선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호위로 붙은 구축함도 피격을 무서워해 침몰선을 내버려두고 달아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주간이라면 나중에라도 발견될 확률이 높았지만 야간에 기습을 받았다면 동튼 이후 침몰 좌표로 가봤자 생존자들은 파도에 떠내려가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연합군의 해군 전력도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했다. 비록 대서양 전투의 향방이 연합국 승리의 궁극적 요인 중 하나가 되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 대가는 비쌌다. 치열했던 6년간 '''175척'''의 연합국 군함이 침몰하였고 '''36,200여명의 해군이 전사하였다''', [[태평양 전쟁]]을 제외한다면 HMS [[후드]]나 항공모함 HMS 글로리어스 같은 몇몇 사례를 뺀 나머지 연합군 군함의 손실은 유보트에 의한 것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게 크릭스마리네가 들이밀만한게 유보트 말고는 없었다.] 당장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이 손실한 항공모함이 총 8척(정규항모 5척, 호위항모 3척)이었는데, 그 중 5척(정규항모 3척, 호위항모 2척)이 유보트에 의해 격침'''당했다.[* 손실한 항모중 아크로열을 제외하면 구식함정이라 성능의 한계가 많았던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해군력의 중핵이라 할 수 있는 항모가 이 정도 피해를 입을 정도였다. 그 중 각각 비스마르크 추격전과 [[타란토 공습]]에 참가한 항공모함 HMS [[아크로열급 항공모함|아크로열]]과 HMS [[이글]]의 경우엔 모두 몰타섬에 물자를 공급하는 호송선단을 호위하던 중 지중해에서 격침되었다. 아크로열의 침몰지점은 불과 지브롤터에서 5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항모 외에도 전함 2척(로열 오크, 버럼)도 역시 유보트에 의해 잃었다. 이건 독일군도 마찬가지였는데, '사망률'은 타 병과의 수치를 아득히 초월한다. 대전기간 U보트 '''783척'''과 해군함정 '''47척''' 격침되었으며 그와 함께 '''30,000명'''의 병사가 전사하였다.[* 당시 독일 해군 잠수함대의 병력이 약 40000여명 이였으니, 해군함 전사자들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거의 70% 이상의 잠수함 승조원이 대서양 전투에서 전사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